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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커피향 가득한 기록, 감성 카페 10곳을 걸으며 만난 도시의 표정들

by sumin1000 2025. 12. 4.

경주 카페 이미지

경주는 늘 ‘고요한 유적의 도시’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경주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틀 동안 도시를 걸으며 들른 열 곳의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경주가 가진 시간의 결과 현재의 호흡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소였다. 아침마다 능선 위로 얇게 번지는 빛을 마주했던 카페 능부터, 황리단길의 젊은 감성이 응축된 노워즈, 보문호수의 움직이는 물결이 시선 아래 펼쳐지는 라운지앤더카페, 그리고 감포의 바람이 그대로 창을 흔들던 해안 카페까지. 각 공간마다 향의 농도, 의자의 높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 창을 통과해 들어오는 빛의 색이 전부 달랐다. 나는 그 미세한 차이들 속에서 경주라는 도시가 어떤 호흡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이번 글은 관광지가 아닌, ‘카페’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도시를 바라본 여행기다. 맛으로도, 향으로도, 그리고 풍경으로도 기억되는 경주의 감성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해보았다.

 

카페를 중심으로 걷는 경주 여행이 주는 특별한 경험

경주에서의 첫날 아침은 유난히 정적이었다. 숙소 창문을 여니 날씨는 맑았지만 공기는 차갑게 굳어 있었고, 먼 곳에서 능의 둥근 실루엣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원래는 대릉원부터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여행을 시작하기 전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져 자연스럽게 카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페 중심 여행’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경주는 이상한 도시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땅의 숨을 느낄 만큼 조용해지다가도, 골목 하나만 돌면 젊은 사람들의 활기가 넘친다. 한옥 지붕 아래 드리워진 긴 그림자와,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에스프레소 향이 같은 거리 안에서 뒤섞인다. 이 조용함과 활기, 오래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카페는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다. 그 분위기를 가장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매개체다.

경주의 카페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시간을 품고 있다. 어떤 카페는 고분을 마주한 창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축하고, 어떤 카페는 호수의 움직임을 실내로 끌어들이고, 또 다른 카페는 황리단길의 다채로운 결을 빛과 음악으로 녹여낸다. 나는 그 속에서 경주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되었다.

처음 들른 카페 능에서 나는 고분과 창을 나란히 두고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했다. 이후 노워즈에서는 바리스타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의 향이 골목을 따라 퍼져 나갔고, 향미사에서는 손끝으로 직접 향을 조합하는 체험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 나는 경주의 풍경보다 그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온도, 냄새, 빛의 결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이 여행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관광지가 아닌 ‘카페’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움직였을 때 어떤 도시적 감정이 만들어지는지, 경주는 그것을 어떻게 품고 있는지, 나는 그 질문을 품고 이틀 동안 열 곳의 카페를 걸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주는 단순히 유적의 도시가 아니라 현재라는 시간도 깊게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이 글은 그 이틀의 기록이다. 감성이 아니라 실제 걸음의 기록이며, 공간의 환상이 아니라 공간이 내게 건넨 분위기의 기록이다.

 

이틀 동안 걸으며 마주한 경주의 감성 카페 10곳

1. 카페 능 – 고분 앞에서 마시는 첫 커피
여행의 시작은 이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버터 향과 따뜻한 공기가 밀려왔다. 나는 창가에서 한 자리 뒤쪽에 앉았고, 따뜻한 플랫화이트를 손에 쥔 채 능선을 바라보았다. 빛이 느리게 이동하는 장면을 보며, 오늘 여행의 속도가 저절로 정해지는 느낌이었다.

2. 노워즈(NOWAWS) – 황리단길의 젊은 숨결
카페 능에서 나와 황리단길로 향했다. 골목에 가까워질수록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공기 속에 섞여 들어왔다. 노워즈는 외관부터 세련되어 있었고 문을 열자 고소한 원두 향이 훅 들어왔다. 바 자리에서 바라본 바리스타의 손 움직임은 리듬처럼 느껴졌다.

3. 향미사 – 경주의 향을 직접 만들어 본 경험
향을 조합하는 공간은 조용하면서도 밀도 있었다. 여러 향을 맡아가며 내 여행을 기록할 수 있는 향을 만들었다. 손끝에서 태어나는 작은 향이 경주의 공기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스텔라커피 – 로스터리의 깊은 집중
좁은 골목을 지나 들어간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바리스타가 권해준 싱글오리진은 산미가 또렷했고, 잔을 들 때마다 과일 향이 은근히 올라왔다. 창밖으로는 황리단길의 흐름이 느리게 지나갔다.

5. 라운지앤더카페 – 보문호수를 통째로 들이는 창
이날 오후, 호수를 따라 산책한 뒤 이곳에 들어갔다. 큰 창이 호수를 정면으로 맞고 있었고, 물결이 유리창 아래에서 반짝였다.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느긋해지는 리듬이 공간에 가득했다.

6. 985B – 로컬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베이커리
이곳의 시그니처는 빵이다. 갓 구운 빵 냄새가 공간 전체에 퍼져 있었고, 나는 따뜻한 바게트와 라떼를 주문했다. 바게트의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여행 중 먹었던 가장 ‘집 같은’ 느낌의 간식이었다.

7. 황남빵 카페 – 정통 경주 느낌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황남빵을 직접 굽는 공간과 카페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갓 구운 빵 냄새가 계단을 따라 올라왔다. 나는 따뜻한 율무차와 함께 황남빵을 먹었고, 그 순간만큼은 여행이 아주 단순한 행복으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8. 오하이 커피 – 대릉원 담장 옆의 조용한 한 자리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히 쉬기 좋았다. 넓은 창을 통해 고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모습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휴식이 필요한 타이밍에 꼭 맞는 공간이었다.

9. 모멘토 커피 – 여행 흐름을 다시 정리하는 오후의 공간
이곳에서는 디저트와 브루잉이 유명했다. 달콤한 레몬 파운드케이크와 함께 산미가 고운 커피를 마시니, 여행의 리듬이 다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10. 감포 바닷가 카페 – 이틀의 끝, 파도 소리와 함께
마지막 날, 감포 해안으로 향했다. 바람이 조금 강했지만 창가에 앉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가 묘하게 안정적이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틀 동안 걸었던 경주의 장면들을 조용히 떠올렸다. 바다는 확실히 여행의 문장을 마무리해주는 힘이 있었다.

 

카페를 따라 걸으니 경주가 다시 보였다

이틀 동안 열 곳의 카페를 걸으며 느낀 건 하나였다. 경주는 유적을 보러 가는 도시가 아니라, ‘시간을 경험하러 가는 도시’라는 사실이다. 카페마다 담고 있는 향, 온도, 조명, 창밖 풍경이 서로 다른 시간의 결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결들을 따라 걸었고, 자연스럽게 도시의 호흡까지 느끼게 되었다.

고분 앞에서 마신 첫 커피, 황리단길의 활기, 호수의 물결, 감포의 바람. 이 모든 감각이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더 선명하게 들어왔다. 여행이란 결국 공간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느냐의 문제인데, 경주의 카페들은 그 감정을 매우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만약 경주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이번에는 카페를 일정의 중심에 두어보길 권한다. 생각보다 많은 장면이, 많은 감정이, 카페 안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